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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미드 리뷰] '100(원헌드레드)' (feat. 혐오 없는 세상을 말하다)

1. 100(원헌드레드), 혐오 없는 세상을 말하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쉐도잉을 하기 위해 여느 때처럼 '프렌즈'를 눌렀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화면이 새로고침 되며 화면이 한 칸 위로 올라갔다.

 

그 때 순간적으로 어떤 미드를 잘못 클릭하게 되었다.

그 미드는 바로 Morgan Kass의 'The 100'을 원작으로 하는 미드 100(이하 '원헌드레드')였다.

 

 

그렇게 '원헌드레드'를 시청하게 되었고 3일만에 시즌4까지 정주행하는 개인 최고기록(?)을 수립했다.

 

살면서 본 미드는 여러 개가 있었지만 단순한 흥미유발 뿐만 아니라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미드는 한 편도 없었다.

그런데 '원헌드레드'는 달랐다.

매 회를 볼 때마다 끊임없이 나를 단상에 젖도록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원헌드레드'는 2192년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많은 부분에서 현시점인 2020년을 기준으로 아직까지도 만연한 각종 혐오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

어쩌면 내가 법공부를 한 터라 그런 것들이 남들보다 더 많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 칼럼은 현시점인 2020년에 잔존하는 혐오들은 어떠한 것들이 있고, 그것이 '원헌드레드'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었는지 간단하게 정리해보려고 한다.

'원헌드레드'는 의도를 가지고 혐오를 정면으로 다룬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시점의 만연한 각종 혐오들을 당연한 것이라고 느끼게끔 드라마 여기저기에 장치해두었다.

2. 흑인 수상, 그라운더스 그리고 인종차별

첫 번째 혐오는 바로 인종차별에 관한 것이다.

'원헌드레드'는 흑인 수상인 '자하'라고 불리는 케릭터가 배에 총을 맞은 상황으로부터 시작된다.

 

사실 지금은 흑인인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력이 있는데다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인물로 꼽히면서 흑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누구도 자신있게 인종차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종차별을 유튜브에서도 심심치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드라마가 처음 시작하자마자 등장하는 수상을 흑인으로 설정한 것이 인종차별이 없는 세상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가 일부러 설치한 장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면 '원헌드레드'내에서 이러한 설정은 핵전쟁으로 지구를 탈출하여 여러 국가의 사람들이 좁은 우주선에서 함께 생활해야 하는 척박한 환경이니 만큼 인종차별을 나쁜 것으로 여겼다기 보다 생존을 위한 당연한 것으로 여긴 것으로 설정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2192년을 더이상 인종차별이 없는 세상으로 작가가 의도하고 그렸다기엔 '스카이 크루'가 지상으로 내려왔을 때 지상의 원주민들인 '그라운더스'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차별하고 무자비하게 죽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작가는 어쩌면 인종차별이 시간이 지나도 해결하기 힘든 문제라고 생각했을런지도 모르겠다.

3. 여성 리더 그리고 성차별

'원헌드레드'의 주인공이자 드라마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존재는 바로 '클라크'라는 여성 케릭터이다.

'클라크'는 지구가 살만한 환경인지 알아보기 위해 우주선에서 지상으로 내려보낸 100명의 아이들 중 한 명이다.

 

극의 초반부터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그녀의 영향력은 시즌이 지날 수록 점점 커져 나중엔 죽음의 사령관이라는 '완헤다'라는 칭호까지 갖게 된다.

그리고 비단 '클라크' 뿐만 아니라 '원헌드레드'의 각 부족을 대표하는 영향력 있는 리더는 90%가 여성으로 나온다.

 

극에서 등장하는 남성리더와 여성리더가 50%씩을 차지하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90%가 여성이 리더로 나온다는 것은 작가가 일부러 설치한 장치로 볼 수밖에 없다.

4. 동성애 그리고 성소수자

'원헌드레드'에서는 사랑의 경계가 없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랑의 상대가 반드시 이성일 필요가 없다.

이성과 사랑을 나누었다가 동성과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이러한 형태의 사랑을 하는 성애자를 바이섹슈얼이라고 한다.

그런데 '원헌드레드'에서는 이것을 어떤 성애자라고 규정조차 짓지 않는다.

그냥 자연스러운 사랑으로 전제되어 있다.

이는 그러한 사랑을 특별한 것으로 치부하지 않는 케릭터들의 대사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랑' 그 자체에만 집중하여 이야기가 전개된다.

 

우리 사회에서 혐오로 치부되는 것들 중 하나가 동성애이다.

보수적이던 과거보다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복잡계적 시각에서 바라보았을 때 동성애의 감정을 느끼는 인구의 비율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즉, 동성애는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왔으며, 단지 이전에는 사회분위기상 그것을 겉으로 밝히지 못해왔던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석천이형만 보더라도 게이라는 소재를 방송에서 개그소재로 자유롭게 다룰 수 있을 만큼 사회 분위기가 개방적으로 변한 것을 보면 이렇게 추측하는 것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혹자는 동성애자를 정신병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야 말로 자신과 다른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공감능력이 결여된 정신병자라고 할 수 있다.

5. 스카이 크루와 이주민

이것은 인종차별의 주제 안에 묶일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하지만 미묘하게 달라 따로 빼둔 소주제이다.

바로 '이주민' 문제이다.

 

'원헌드레드'에서 보면 지구에서 계속 살고 있던 사람들은 우주에서 지구에서 내려온 사람들을 가리켜 '스카이 크루'라고 말한다.

그들에게는 '스카이 크루'가 이주민인 셈이다.

처음에 그라운더스는 이들을 위험한 존재라고 생각하여 죽이고 공격한다.

 

이주민 문제는 2192년이 되어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 걸까?

우리 사회는 난민문제부터 시작해 해외에서 한국으로 온 이주민문제 등을 이미 겪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를 해겨하기 위한 여러 단체들, 제도들이 마련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나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배척하는 인간의 습성은 교육만으로는 정녕 고칠 수 없는 것일까?

설령 그것을 교육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해도 '원헌드레드'와 같은 극한 상황을 마주한다면 언제든 발현되는 것일까?

6. 특별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의 특별함

어쩌면 당신은 '원헌드레드'를 보면서 이 미드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를 어떤식으로 다뤘는지 느끼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당신이 지극히 정상인 것을 뜻한다.

나는 법을 공부하며 인권분야에 관심이 있었기에 '원헌드레드'가 단순히 상업용 미드로만 보이지는 않았던 것 뿐이다.

 

'원헌드레드'는 2192년을 현재시점으로 두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감독은 아마 그 때쯤이면 지금 만연한 서로에 대한 혐오가 모두 사라졌을 것이라는 대전제를 두고 드라마를 제작했을 가능성이 높다.

감독의 생각처럼, 믿음처럼 그 때쯤이면 서로에 대한 혐오가 멈추게 될까?

 

'원헌드레드'는 비현실적인 SF미드이면서도, 동시에 우리 현실을 담은 미드이다.

혹시 아직 보지 않았다면 추천한다.

 

덧붙여 내가 이 글에서 다룬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각종 혐오들을 극중에선 어떻게 다뤘는지 작가의 생각을 추측하며 한 편씩 본다면 '원헌드레드'를 훨씬 맛깔나게 볼 수 있을 것이다.